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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는 인간 존재의 깊이를 섬세하게 탐구한 작품이다. 주인공 윤정희가 연기한 ‘양미자’는 인생의 말미에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된다. 그녀가 시를 쓰려는 동기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인간 내면과 삶의 본질을 마주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 글에서는 영화 ‘시’ 속 양미자가 시를 쓰게 된 경위와 그 감정선, 그리고 김용택 시인의 시 세계와의 연결 지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시적 감성을 깨운 계기, 일상의 균열
양미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균열을 마주하게 된다. 병원에서 기억력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삶의 무게와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무언가에 의지할 필요를 느꼈다. 그때 동네 문화센터에서 ‘시 쓰기 수업’을 발견했고, 그것이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는 창구가 되어주었다. 일상의 찌꺼기 같던 감정들이 시를 통해 언어로 풀려나가기 시작했고, 그 과정은 그녀에게 치유이자 자기 발견의 여정이 되었다.
시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손자의 친구가 연루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자에게 시는 단지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고, 침묵과 모호함으로 점철된 현실을 시로써 말하고자 했다.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언어를 찾기 위해, 그녀는 시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또한, 양미자가 시를 통해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묻어두었던 감정과 기억들이 언어로 정리되면서였다. 손자와의 관계, 엄마로서의 역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나이 들어가는 자신에 대한 불안까지. 그녀는 시를 통해 모든 삶의 순간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듯 새로워졌다.
시의 언어로 세상을 마주한 양미자
미자가 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분명 현실에서의 고통과 마주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 시적 감성은 점차 그녀의 삶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물건, 사람, 풍경 등 사소한 모든 것에 주목하게 되었고,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시 쓰기 수업의 강사는 그녀에게 '진실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말하는 것'이 시라고 말해주었고, 그녀는 그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미자는 점점 삶을 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노트에는 관찰한 사물과 감정들이 하나둘 적히기 시작했고, 그렇게 언어로서의 시는 그녀의 삶 속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서툴고 느렸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더 깊은 사유와 집중을 가능케 했다. 그녀는 시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그 속에서 작은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시를 쓰는 행위는 미자에게 더 이상 '수업'이나 '과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를 살아가는 중요한 방식이 되었다. 주변 이웃과 대화하면서, 낙엽이 떨어지는 길을 걸으며, 혹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언어를 떠올렸다. 그것은 삶을 섬세하게 바라보려는 훈련이었고, 결국 그녀를 더 깊은 인간으로 성장시켰다. 시는 그녀에게 단순한 문장이 아닌, 존재 그 자체였다.
김용택 시인의 시 세계와의 연결점
김용택 시인은 삶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언어를 통해 진실에 닿는다. 영화 ‘시’ 속 양미자의 시도 그러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건과 감정을 토대로 시를 썼고, 그것은 김용택 시인의 시처럼 사람 냄새 나는 언어였다.
김용택 시인의 대표 시 중 ‘섬진강’이나 ‘그 여자네 집’ 같은 작품들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기억 속 감정을 담담히 풀어낸다. 양미자의 시적 접근 또한 그러했다. 그녀는 억지로 꾸미거나 외적인 표현에 치중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시에 담으려 했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시를 낭독하는 장면은, 김용택 시인의 시처럼 조용하지만 울림이 컸다.
특히 두 사람의 시 세계에는 공통된 정서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소외된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김용택은 시골 마을의 삶을, 양미자는 도시의 외로운 노년을 포착했다. 그들이 시로 다룬 대상은 다르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같았다. 또한 그들의 시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배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양미자의 시도는 김용택의 시 정신과 닮아 있었고, 진심으로 시를 대하는 태도는 관객에게 진한 울림을 전했다.
영화 ‘시’는 시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한 작품이었다. 양미자가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단순한 문학적 관심이 아니라, 삶의 모순과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한 내적 갈망이었다.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언어는 진실이었고, 감정이었으며, 생존이었다. 독자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시가 가진 힘과 그 치유의 가능성을 느껴보길 바란다. 시는 때론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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