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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교육도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토론’이다. 예전에는 토론이 사고력 훈련에 딱 좋은 방식이라고 여겨졌지만, 요즘은 좀 달라졌다. 오히려 토론이 갈등만 키운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래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게 바로 ‘숙론’ (熟論)이다. 이 글에서는 경쟁 중심의 토론과 경청과 공감을 중심으로 한 숙론의 차이를 이야기했고, 왜 숙론이 요즘 같은 시대에 더 맞는 방식인지 하나씩 살펴봤다.
기존 토론, 왜 좀 피곤했을까?
예전 학교 수업이나 토론 대회를 떠올려보면, 뭔가 ‘이겨야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누가 더 논리적으로 말하느냐, 누가 더 날카롭게 반박하느냐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 그래서 토론은 자연스럽게 말싸움처럼 흘러가곤 했다. 서로 말 자르기 일쑤였고, 내 말이 맞다고 우기는 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토론 방식이 말솜씨나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줬던 건 맞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점도 분명해졌다. 학생들은 상대방 얘기를 ‘듣기’보단 ‘반박할 틈 찾기’에 집중했다. 이기기 위한 토론은 결국 진짜 소통을 가로막았고, 정작 중요한 ‘이해하려는 마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런 분위기는 공동체적인 사고보단 경쟁심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누군가와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보다, 누가 더 똑똑해 보이느냐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 본래의 의미, 즉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소통하는 문화는 약해졌다.
숙론, 듣고 나누는 대화의 힘
‘숙론’은 기존 토론과는 다르게 접근했다. 핵심은 ‘이기자’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자’에 있었다. 누가 옳은지(Who is right)를 따지기보다, 무엇이 옳은지(What is right)를 같이 고민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숙론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청’이었다. 상대방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 그리고 그 말의 의도와 감정까지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토론에서는 “그건 틀렸어, 내 말이 맞아” 같은 말이 자주 나왔지만, 숙론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 “그런 관점도 있구나, 내 생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같은 말이 오갔다.
또 어떤 학생은 친구의 말이 끝난 뒤, “네 얘기를 들으니 내 관점도 좀 달라지는 것 같아”라고 했다. 이런 말은 토론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숙론은 말하는 기술보다 ‘듣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상대를 이기기보다, 함께 더 나은 답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됐다.
이런 방식은 협업의 기반이 되었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조화롭게 이어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 효과적이었다.
AI 시대엔 수론이 더 어울린다
요즘처럼 AI가 거의 모든 정보를 대신 정리해 주는 시대에는 사실 누가 더 논리적인가 보다, 누가 더 공감할 줄 아는지가 중요해졌다. 단순 정보 전달은 AI가 해주고, 사람은 감정과 생각을 이어주는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국론은 꼭 필요한 교육 방식이 됐다. 서로의 생각을 차분히 나누고, 다름을 이해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은 미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량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대이기에, 다양한 관점의 융합이 훨씬 중요해졌다.
숙론을 경험한 아이들은 협업 프로젝트나 문제 해결 상황에서도 훨씬 유연하게 행동했고, “이건 내 생각이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서로 생각이 다른데 그게 흥미롭다”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창의성과 사회성을 함께 키워주는 교육 효과였다.
결론: 토론이 아닌 숙론, 지금 딱 필요하다
결국 요즘 교육에 필요한 건 ‘누가 더 잘 말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 듣고 이해하느냐’다. 숙론을 경쟁 중심의 토론이 놓쳤던 부분, 즉 공감과 소통의 가치를 되살려줬다.
이제는 이기는 말보다, 이해하는 말이 더 중요하다. 숙론은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진짜 교육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