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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해력, 시대를 관통하는 언어의 민낯
서울대 글쓰기 교수 나민애는 말합니다. “책 100권 읽기보다, 나에게 필요한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중요해요.”
문해력 이슈는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사람들은 늘 “요즘 애들은 글을 잘 못 읽어”라고 말해왔어요.
예전엔 신문에 한자가 많아서 젊은 세대가 잘 모른다 했고, 요즘은 한자어를 한국어로 써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늘어났죠.
게다가 사회는 빠르게 글로벌화되며 줄임말, 외래어, 약어가 넘쳐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물냉’, ‘비냉’ 같은 축약어는 특정 세대에게 익숙하지만, 다른 세대에게는 생소한 말입니다. 이런 단어의 갭은 세대 간 의사소통의 벽이 되곤 합니다.
박완서 작가의 글에 등장하는 '구럭', '울력' 같은 단어도 이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해요.
구럭은 한쪽으로 매는 지게 모양 가방, 울력은 농사일을 함께 하는 협동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쓰지 않으니 점점 잊히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월드와이드웹’, ‘KR’, ‘CO’ 같은 영어 약자나 줄임 표현은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단어의 양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환경과 맥락이 달라진 것입니다.
결국 문해력 문제는 어휘력의 문제이며, 어휘력은 환경과 습관의 결과입니다.
영상을 많이 보고, 짧은 글에 익숙한 시대 속에서 긴 글을 읽고 소화하는 능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다는 지적이에요.
문해력은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기반입니다.
감정 표현의 다양성도 마찬가지예요. “속상해” 하나로 표현될 수 있는 마음의 결은 무수히 많지만,
이를 분화해내는 단어를 모르면 자기 감정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요.
2. 책 읽기의 기술: 한 문장, 한 단어에 귀 기울이기
나민애 교수는 독서란 머릿속에 책을 ‘씹고 토해내는 과정’이라고 말해요.
고등학교 때 열심히 문제집과 교과서를 보던 아이들이 대학에 오면 전공 서적을 읽고는
“저 이거 하나도 이해 안 돼요”라고 말하곤 해요.
단어의 결, 문장의 흐름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밑줄을 긋고, 노트에 문장을 옮겨 적으라고요.
특히 자신의 책이라면 밑줄, 도서관 책이라면 필사를 통해 문장을 머리에 새기라고요.
98년도부터 교수님도 그렇게 해오셨고, 결국 단어가 자기 것이 되어갔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받은 아이는 결코 악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이런 문장 하나가 머리에 새겨질 때, 생각의 깊이도 따라 깊어집니다.
그래서 교수님은 시집을 추천합니다.
시는 짧지만 밀도가 높은 언어의 정수이며, 단어 하나의 에너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시는 감정 표현, 감성 언어를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장르예요.
김소월, 정지용, 백석의 시집은 고풍스러운 단어, 잘 쓰지 않는 표현들로 가득해요.
‘묘연하다’, ‘아련하다’, ‘아릿하다’와 같은 표현은 감정의 미묘한 결을 느끼게 해주고,
결국 자기 내면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백석 시집은 난이도가 높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의 시는 북한 방언과 토속어가 가득해 낯설지만, 뜻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와 성장의 체험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교수님은 이렇게 말해요.
“100권을 읽을래, 한 권을 100번 읽을래?” 그럴 때 그녀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정독, 반복, 필사, 메모는 책을 나의 언어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예요.
다만 억지로 읽는 것은 권하지 않아요.
‘남들한테 좋은 책이 나한테도 좋은 책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하라고 해요.
억지로 억지로 읽다가 독서 자체가 싫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서평을 참고하고, 역자 후기나 해설을 읽으면서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그것이 독서의 최종 목표입니다.
3. 문해력을 키우는 환경: 함께 읽고, 함께 자라는 독서 생태계
문해력은 습관입니다. 그리고 습관은 전염됩니다.
교수님의 자녀들도 어릴 때부터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었어요.
집안에서 책을 찢고, 밑줄을 긋고, 따라하며 커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인품이 뭐야?”, “근엄은 뭐야?”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그 단어를 설명해주고 함께 감정의 언어를 나누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고 말해요.
문해력은 단어로 사람을 보는 힘이에요.
“무서운 선생님이 근엄한 선생님이야, 위엄 있는 선생님이야?”
이런 차이를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아이도 감정을 분화해서 인식할 수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긴 글을 힘들어하지만, 그것은 익숙하지 않아서입니다.
긴 글도 엉덩이 붙이고 읽다 보면 점점 덜 힘들어져요.
책은 천천히 혼자서 쌓아가는 성지(聖地) 짓기 놀이라고 교수님은 말합니다.
빠르고 쉬운 것만 찾다가 놓치고 있는 게 바로 그 고요한 성장이에요.
도서관, 서점, 북클럽 등 책을 읽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책을 읽으면 그 힘은 배가 됩니다.
유튜브는 다양성을 주지만, 책은 깊이를 줍니다.
영상보다 책이 줄 수 있는 건 결국 자기 언어의 발견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어느새 책을 펼치게 됩니다.
이것이 문해력,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읽기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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